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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한류의 중심에 서다
작성일: 
2013-02-19 오전 10: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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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급기야 ‘서울’을 세계적 문화 도시로 부상시켰다. 영국의 디자인 전문지 월페이퍼가 ‘2013 디자인 어워즈’ 도시 부문(베스트 시티) 수상지로 서울을 선정한 것이다. 이 잡지는 선정 이유에 대해 “서울은 현재 대중문화의 거대한 엔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예술로 촉발된 한류가 특정 장르를 뛰어넘어, 수도 서울과 한국을 세계화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문화예술, 한류의 중심에 서다
유사 이래 지금처럼 ‘코리아(Korea)’가 세계 무대에서 각광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 일등공신은 ‘한류’이고, 한류의 키워드가 문화예술이었음을 부인할 사람 또한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예술은 언제, 어떤 경로로 한류라는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일까. 또한 그 집이 어떻게 우리 경제의 보물창고가 되고 있는 것일까. 그 과정을 이해하는 일은 세계는 물론 우리 자신조차 놀라게 만든 한류 돌풍을 어떻게 경영에 접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중국 언론에 의해 ‘한류’라는 신조어가 생길 무렵만 해도 세계인이나 우리 모두 한국 대중문화의 파급력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언론이나 학계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는커녕 ‘연예계 단신’쯤으로 치부됐다.
한류에 주목한 이들조차 “우리와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한 중국과 타이완, 베트남 등지에서 생긴 일시적 ‘붐’일 것”이라며 “지속성을 유지하기도, 아시아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도 어려울 것”이란 분석을 앞 다퉈 내놓았다. 그런 견해는 전문가들뿐 아니라 한류를 바라보는 대다수 ‘우리’의 시선이기도 했다.

드라마로 시작된 문화예술 한류의 계보
실제로 한류 1.0으로 명명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정서와 문화, 경제 규모 측면에서 동질성을 가진 중국, 타이완, 베트남 등 한자 문화권에 국한된 것이 사실이었다. 즉 그 정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던 것.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방영된 외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시청률 1위(16.6%)에 오른 것은 놀라운 일이긴 했지만 ‘어쩌다 거둔 우연의 신기록’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 콘텐츠의 매력은 단발성에 그치지 않았다. 1999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주연 배우 안재욱이 중화권 톱스타로 급부상했고, 2000년 H.O.T의 성공적인 베이징 공연이 이어지자 중국의 한 신문이 “한류가 중국을 강타했다”고 보도하면서 신조어 ‘한류’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사실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는 2000년대 초반 발전 단계로 접어들면서 한계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줬다. 지역적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장르 확산의 조짐은 희망적으로 감지되었다. 한류의 장르가 드라마에서 대중음악으로 옮아가면서 다품종 소비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 K팝으로 명명된 한국 대중음악은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서서히 중화권과 동남아시아로 전파되고 있었다.
지금이야 한류를 마치 우리 모두의 염원으로 빚어낸 현상처럼 떠받들지만 한류 초창기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딴따라’라며 하급 문화로 치부했던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그 어떤 고급 문화도 해내지 못했던 성과를 올린 사실이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한 속내와 무관하게 한국의 드라마와 대중음악은 쌍두마차가 되어 한류를 이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 한류의 진화 과정에 대한 추적을 계속해 보자.
한류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우리에게 문화적 충격을 준 건 일본이 한류의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만이 일본의 위상과 저력을 무시한다는 농담도 있지만, 일본이 우리 대중문화에 열광한다는 소식은 놀라운 사건임이 분명했다.

근대 이후 문화교류란 측면에서 한·일 양국의 관계는 늘 일방통행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일본이라는 거름종이를 통해서만 서구 문화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번역본을 우리말로 옮겨야 우리의 서가에 책들이 채워졌고, 그들의 만화로 뜨거운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J팝에 열광한 한반도의 젊은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일본인이 배용준을 ‘욘사마’로 부르며 한국의 드라마 촬영지를 여행지로 삼는 행렬이 줄을 이었으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한류 2.0에 속하는 2000년대 중반 ‘겨울연가’가 한·일 관계에서 일방적 대중문화 수출국이었던 일본을 수입국으로 만든 것이 충격적 사건이었다면, ‘대장금’은 한류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단초를 제공한 상징적 콘텐츠였다.

당시 ‘대장금’은 무려 62개국에 수출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수출 지역이 한류의 한계선이라고 여겨졌던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동유럽까지 확장된 것은 한류가 글로벌 현상으로 격상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류의 글로벌 가능성을 확인한 이 시기에는 하나의 콘텐츠에 쏠렸던 소비자들의 관심이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오리콘 차트에서 수차례 1위를 기록한 보아와 남성 그룹 동방신기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K팝에서 촉발된 ‘글로벌 신한류’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과연 한류가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와 우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류 3.0은 K팝을 중심으로 ‘글로벌 신한류’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신한류의 첨병은 아이돌이었다. 샤이니, 소녀시대, 비, 카라 등 아이돌들은 현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며 영향력을 키워갔고, 노래뿐 아니라 패션과 화장법, 춤 등을 따라하는 팬들의 ‘팬덤(Fandom)’ 문화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K팝의 선두주자임을 자임한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대중문화 기업의 전략으로 미국 등 세계 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미 시장에 직접 진출한 몇몇 스타들은 주목할 만한 소득을 올리지 못했고 여론은 그들의 시도를 ‘무모한 도전’이라며 낙제점을 주었다.
그렇게 “한류의 범위는 기껏해야 아시아권 혹은 제3세계 정도이지 세계 문화의 중심부인 북미나 유럽에서는 통용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비난이 쏟아지던 지난해, 소비자인 세계나 생산국인 한국 모두가 경악할 대사건이 벌어졌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최초로 12억 뷰에, 한국인 최초 빌보드 핫 100 차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꿈이 실현된 현실이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신한류의 일대 전환점이 된 싸이의 등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세계 문화의 중심인 파리와 뉴욕에서 수많은 시민들은 ‘강남스타일’을 연호하며 말춤을 췄다. 혹자는 말춤이 미국인들에게 서부개척 시대의 카우보이를 추억케 해서 열풍이 불었다고 분석하기도 하고, 한때 전 세계에 유행했던 ‘마카레나’ 춤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싸이의 붐이 현재진행형이듯 성공요인에 대한 분석 역시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강남스타일’의 성공이 세계 시장을 노린 마케팅의 결과물이 아니란 점이다. 전략적으로 세계 무대를 공략한 증거가 없다. 그건 ‘강남스타일’이 파급력의 속도와 범위가 빠르고 넓은 SNS와 인터넷 공간에 중독성 강한 B급 정서를 풀어놓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 들어왔다는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문화산업 경쟁력의 새 패러다임
한류 3기 즉 신한류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런 현상은 비단 싸이의 성공에서만 확인되는 건 아니다. 싸이만한 핵폭탄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한류의 실핏줄이 되고 있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한국과 유사하다는 폴란드의 서점가에 한국 소설이 진열되는 건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2011년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했고, 지난해에는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2012년 봄, 최고의 책’으로,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2012년 겨울,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드라마와 대중음악으로 촉발된 한류가 신한류 단계로 접어들면서 본격 우리 문학으로까지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지금까지 한류는 드라마와 K팝을 통해 한류라는 한정된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신한류 단계로 진화한 한류는 ‘한정적 정체성’을 깨뜨리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콘텐츠를 생산해 수출하고 수익을 창출하던 초기의 단순 공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단 영역의 확장이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게임과 만화 등 대중문화의 하위 장르까지 한류가 확산됐으며, 미술과 클래식을 비롯한 순수예술로도 외연을 넓히고 있다. 즉 상하로 범위가 확장되는 바람직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리랑’이나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조차 잊힌 1970년대 가수 배호를 음악적 자산으로 삼는 외국 뮤지션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물론 이런 현상 역시 우리의 공격적 마케팅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신한류는 이제 문화예술 일변도에서 탈피하는 특징도 보여준다. 1997년 중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시발점으로 삼은 한류는 이제 영화와 ‘난타’, 비보잉, 애니메이션, 패션, 캐릭터, 온라인게임, 한글, 한국어 배우기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기에 중요한 소비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10~20대 젊은 층들이 신한류의 중심 소비자층이 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외교통상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의 한류 팬클럽은 73개국 843개로 회원 수만 670만 명에 달한다. 이 팬클럽의 주요 계층이 바로 젊은 세대다.
아시아에서 전 지구적 현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한류는 수많은 담론을 낳고 있기도 하다. 미국이 주도해 온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대항 담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담론들을 통해 향후 신한류를 어떻게 진화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 출처 : 월간 CHIEF EXECUTIVE 2013년 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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