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로 38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논의가 시작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적, 재정적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발 빠른 기업들은 안전교육 강화나 안전 캠페인 등 기존 활동 외에 IT 솔루션을 도입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한 안전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추석이 있는 달에는 산재 사망 사고가 증가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12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추석 연휴 전후 3개월간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사례를 분석한 결과 추석이 있는 달에 3.22명이 숨져 전달 3.1명, 다음 달 2.55명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연휴 전 작업을 바쁘게 처리하다가 안전 조치에 소홀한 결과라고 보고 ‘추석 연휴 대비 중대재해 위험 경보’를 발령했다. 특히 추석 연휴에 가까워질수록 사망자가 늘었다며 노사의 자율적인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어우러져야 산재 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10만 명당 치명률¹⁾을 보면 한국은 4.6명(2019년 기준)으로 콜롬비아 18명(2015년), 멕시코 8.2명(2015년), 터키 7.5명(2016년), 미국 5.3명(2018년)에 이어 5위였다.
국가별로 통계 연도나 ILO에 보고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각국이 치명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한국이 가장 최근 데이터라는 점을 감안할 때 5위라는 순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참고로 2015년 한국의 10만 명당 치명률은 5.3명, 2018년에는 5.1명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분석’에서는 산업재해 가운데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사망자 수가 지난해 2062명으로 2019년 대비 2.1% 증가했다. 최근 몇 년 통계를 살펴보면 대체로 사망자 수는 2000명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한편 한국노동연구원이 2018년 12월 발표한 ‘산업재해의 경제적 손실비용 관련 연구 : 제조업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재해의 경제적 손실 비용은 연간 약 45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한국안전공단의 산업안전보건 동향 조사를 토대로 제조기업 1829개의 직접 및 간접 손실 비용을 측정한 결과다.
중대재해처벌법 앞두고 부산한 움직임1990년대 중반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얻은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특히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법·제도를 개정하는 등 다양한 개선 방안들을 발표해 왔다.
지난해 1월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 범위 및 산재 예방 책임 주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고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해 발생하는 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도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산업계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KT가 전국의 여러 건설사, 제조사, 물류사들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대응과 관련해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기업들은 업종별로 자주 발생하는 사고재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고 시 원인을 찾아 향후 개선을 가능케 하는 솔루션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의 핵심 니즈는 크게 시설물 안전(안전 감지 및 예지), 작업자 안전(위험 요소 제거), 사업장 관리(유해 요소 감지 및 예측)의 3가지 차원으로 확인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위험 요소 사전 경고 및 알림 등 작업자 안전관리, 돌발사항의 신속 대응을 위한 실시간 위치 추적, 건설 현장 스마트헬멧 착용 관리, 작업자 생체 정보와 위치 기반 쓰러짐 감지 웨어러블 기기, 고위험 구역 작업자 출입 통제와 경보 및 가상 펜스 등 다양한 기능들을 IT 기반 안전관리 솔루션 내에 내재해 주길 원하고 있었다.
즉 다수의 근로자와 시설에 대해 음영 구역 없이 정확하게 제어, 관리하는 통합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었으며 단말의 유지, 보수, 등록 및 다양한 기능들이 지속적으로 추가될 수 있는 호환성 있고 유연한 플랫폼 서비스를 원하고 있었다.
또한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사고 발생 시에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현장 안전관리 예산을 추가 확보하거나 스마트 안전 플랫폼을 설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S사는 최근 건설현장의 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안전 강화를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협력업체에 안전관리비를 100% 선지급하는 등 각종 지원을 강화하고 지난 4월 내화 뿜칠 작업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했다. 또한 근로자 중심의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지난 3월 작업중지권²⁾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선포식을 연 후 6개월 동안 총 2175건의 작업중지권을 활용했다.
H사는 최근 전국 141개 현장에서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안전결의대회를 열고 협력사에 안전관리 강화 방침을 전달했다. 현장 안전사고 발생을 줄이기 위해 안전 관련 ICT에 대한 연구개발뿐 아니라 기술 보유 업체 등과 협업,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장 순찰 로봇과 무인 시공 로봇 등 스마트 건설 기술도 2026년부터 현장에 적용한다.
L사는 ‘그룹 안전관리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대표 직속 하에 ‘안전관리사무국’을 신설했으며 각 계열사별로 안전관리 고도화 방침을 수립했다. 외부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공유 받아 전 사업장에 ESG 안전경영을 확산하거나 산업안전기사 등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안전관리자를 채용해 안전 역량을 강화하는 중이다.
D사는 지난 1월 안전체험학교를 확장하면서 건설현장 5대 고위험 작업을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솔루션을 도입했다. 올해부터 산업재해를 유형별로 빅데이터화하여 현장 전 직원에게 매월 정보를 제공하고 건설 정보 모델링(BIM)을 활용한 안전관리 계획 수립, 드론·CCTV·모션 센서 등을 활용한 사각지대 해소와 안전사고 예방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 다른 D사는 CEO 직속 조직인 품질안전실을 강력한 컨트롤타워 기능을 가진 안전혁신본부로 격상해 안전관리 기능을 강화한다. 향후 5년간 안전 예산에 14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며 법적 안전관리비 외에 별도 예산을 편성해 안전교육 강화, 안전시설 투자, 스마트 안전 시스템 구축 등 관련 인프라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K사는 향후 3년간 3500억 원을 투입하는 전사적인 안전 대책을 내놓았다. 안전경영 체제로의 패러다임 전환, 스마트 안전 시스템 도입, 참여·협동형 현장 중심 안전문화 강화, 협력사 위험관리 체계 구축 등 4대 핵심 전략 추진을 위해 안전관리실 인력도 28명에서 100여 명으로 대폭 확대한다.
산재 예방은 ‘투자’… KT, DX 솔루션 지원이처럼 이제 기업들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지출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IT 솔루션을 통한 보다 체계적인 안전 시스템 수립에 대한 니즈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KT는 기업들의 요구사항들을 반영해 KT의 강점인 통신 인프라와 ABC(AI, Big Data, Cloud) 기반의 중대재해 대응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안전보건 활동을 전개하고 그 활동 내역을 문서화해 중대재해 발생 시 제시 가능한 안전보건 조치에 대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6가지 주요 솔루션을 마련했다.
먼저 ‘통합 안전관제 플랫폼’은 근로자 안전, 현장 관제, 각종 장비 현황 등을 통합으로 관제할 수 있어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지원한다. 또 ‘지능형 영상보안 솔루션(GiGAeyes)’은 작업자 얼굴 인식, 쓰러짐 감지, 근무지 이탈 등 의무적 모니터링 이행 사항을 제공한다.
‘작업자 안전관리 솔루션’은 멀티 센서 IoT 플랫폼을 활용해 작업자 안전관리 및 위험 상황 감지 등 작업자의 안전을 통합적으로 관제해 재해의 사전 예방을 지원한다. ‘화재 안전 솔루션’은 공장, 창고, 작업장의 AI 화재 감지기가 불꽃, 연기, 등을 조기에 감지해 신속한 화재 출동을 가능하게 한다.
‘3D 펜싱(Fencing) 솔루션’은 라이다(LiDAR)³⁾ 기반 가상 울타리(Virtual Fence)로 작업자의 위험지역 접근을 작업자 및 관리자에게 알려 공장 내 끼임, 떨어짐, 깔림사고 등의 돌발적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이다. ‘AI 기반 산업용 로봇’은 인력 중심의 위험한 작업 환경을 로봇으로 대체하고 기존 인력을 안전한 업무에 재배치해 직원들의 작업 만족도를 높이고 사고를 예방한다.
제조기업인 D사는 KT의 ‘작업자 안전관리 솔루션’을 적용해 작업자의 작업 구역, 이동 경로 등 실시간 위치 관리와 작업자 생체 정보, 쓰러짐 감지, SOS 호출 기능을 통한 안전사고 예방에 힘쓰고 있다. 특히 야간 작업자의 안전관리에서 큰 개선을 이루었다.
야간 작업은 1인 작업이 많기 때문에 기존에는 사고 발생 시 상황 인지 및 전파가 늦고 이로 인한 골든타임 확보가 어려웠다. 또한 작업자의 노령화에 따라 긴급한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각 작업자의 안전모에 부착된 태그를 통해 실시간으로 작업자의 위치가 중앙관제실로 전송되고 태그에는 SOS 호출 버튼이 있어 작업자가 위험에 노출되면 길게 눌러 SOS 알람을 울릴 수 있다. 또한 위치 데이터 및 스마트 밴드로 수집한 작업자별 생체 정보를 통해 실시간 상황과 낙상 여부 등을 모니터링하며 위험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기업인 K사는 최근 동종 업계에서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이후 공장 내 시트 하역장 내 리프트에서 관련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3D 펜싱 솔루션’을 도입했다. 사람이나 물체가 위험구역에 접근하면 이를 3D 라이다로 감지 후 알람, 경고를 할 뿐만 아니라 설비 운영 시스템과 연동시켜 설비 작동을 중지함으로써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K사가 도입한 가상 펜스는 KT 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3D 라이다 공간 디렉팅’ 기술을 통해 설정한 위험구역 내 인입을 감지하면 경광등 및 고보(Gobo)라이트를 작동시키고 산업용 PC에서 설비 운영 시스템 간 인입 정보를 전송해 설비 동작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물론 멈춰진 설비는 작업장 안전 확인 후 재동작된다.
안전 시스템, 컴플라이언스 확립해야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 관리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안전보건 조치 의무의 범위를 넓혔다. 중대재해 발생 시 형사적 책임을 한층 더 강화해 기업들로 하여금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게끔 하고 사전사후적으로 대책들을 마련하고 강화하게 한다.
이러한 규제 환경 속에서 앞으로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첫째, 사고 예방을 위한 체계적인 안전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사전사후 적극적인 개선 활동을 진행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안전보건 활동을 체계적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끊임없이 기록하고 저장해 중대재해 발생 시 언제나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사고 발생 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컴플라이언스⁴⁾를 확립해야 한다.
하지만 각 기업들이 중대재해 대응 안전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검증되고 신뢰성 있는 외부 시스템을 도입해 무엇보다 발 빠르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이 내년 1월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리스크 유형을 파악하고 업종과 작업 환경에 맞는 적합한 솔루션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미 산업안전 보건 및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기업들도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을 통해 업무 관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들을 더욱 면밀하게 찾아낼 필요가 있다. 내부에서는 포착하기 힘든 작은 위험 행위가 중대재해를 불러옴을 잊지 말고 항상 경각심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1) 10만 명당 치명률(Fatal occupational injuries per 100,000 workers) : 10만 명당 산업재해로 인한 개인 상해, 질병·사망 등 치명적인 산업재해율
2) 작업중지권 : 근로자가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 권리. 근로자가 스스로 판단해 안전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3) 라이다(LiDAR : Light Detection And Ranging) : 레이저를 목표물에 비춰 사물과의 거리 및 다양한 물성을 감지할 수 있는 기술.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해줄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4)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 조직 구성원 모두가 제반 법규를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사전적, 상시적으로 통제, 감독하는 체제